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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고현 재일동포 100년, 차별을 넘어 연대로"... 제천-효고 민간교류 포럼 개최[제천단양뉴스]

2026-04-17


"효고현 재일동포 100년, 차별을 넘어 연대로"... 제천-효고 민간교류 포럼 개최




제천간디학교-간디만물상회 주최, 일본 효고현 방문단과 함께한 '평화의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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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저녁, 충북 제천시 간디마을센터에서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100년의 역사를 마주하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효고현 재일동포 100년의 역사와 현재'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제천간디학교와 간디만물상회가 주최하고, 일본 효고현에서 방문한 동포 3세 및 일본 시민들이 발제자로 나섰습니다.

이번 행사는 지난 가을 제천간디학교 학생들의 일본 방문에 이은 답방 형식으로 이루어졌으며, 분단과 차별의 역사를 넘어 민간 차원의 교류를 통해 동아시아 평화의 물꼬를 트자는 취지로 기획되었습니다.

100년의 디아스포라, 왜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나

기조 발제를 맡은 강희석 제천간디학교 역사 교사는 '왜 건너갔을까?'라는 주제로 일제 강점기 토지 조사 사업과 산미증식계획, 그리고 전시 총동원령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던 조선인들의 아픈 역사를 짚었습니다. 그는 해방 후에도 귀환 동포에 대한 대책 부재와 4.3 항쟁, 한국전쟁 등 조국의 불안한 정세, 그리고 일본의 재산 반출 제한 조치 등으로 인해 60만 명의 동포가 일본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 국적을 박탈당하고 '자이니치(재일)'라는 경계인으로 살아가게 된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조선인이라서 돌을 맞았다"... 3세가 증언하는 혐오와 차별

이어지는 발표에서는 재일동포 3세들의 생생한 증언이 쏟아졌습니다. 전 재일한국청년동맹 효고현위원장인 차일전 씨는 고무 산업이 발달한 고베시 나가타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재일동포 사회의 형성과 그 속에서 겪은 차별을 증언했습니다.

차 씨는 "어릴 적 치매에 걸린 아내의 할머니가 '옛날에 조선인이라고 돌을 맞아 너무 힘들었다'는 기억만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며 세대를 이어져 온 차별의 트라우마를 고백했습니다. 또한 취업, 결혼, 주거 계약 등 일상 곳곳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 때문에 본명(민족명)을 숨기고 일본 이름으로 살아가는 동포들의 현실을 전하며, 자신 또한 고등학교 때까지 정체성을 숨기려 했던 과거를 털어놓았습니다.

"우리학교는 나의 자부심"... 민족 교육의 현장

조선학교 출신인 한리화 씨는 '우리학교'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우리학교에서는 구구단도 우리말로 외우고, 수업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도 우리말을 쓴다"며 철저한 민족 교육 현장을 소개했습니다. 한 씨는 "조선사람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학교 교육 덕분"이라며, 일본 정부의 차별과 지원 배제 속에서도 아이들을 지켜온 동포 사회의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인의 반성과 연대, 그리고 법적 과제

일본인 활동가 히가시 가즈야(Two Dreams 대표) 씨는 "일본 교육에서는 식민지 지배가 '침략'이 아닌 '통치'였다고 가르치기도 한다"고 비판하며, "일본이 패전국이면서도 아시아 국가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는 재일조선인과 함께하며 전쟁 없는 평화로운 미래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준희 세무사(민단 효고현지부 감사)는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를 설명하며, 세금은 내지만 참정권이 없는 현실과 '특별영주자'로서 겪는 법적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특히 귀화하지 않으면 공무원이 될 수 없거나 민족 학교 출신이 겪는 불이익 등 제도적 차별의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연대의 밤

이날 포럼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평화를 다짐하는 자리였습니다. 양희창 간디공동체 상임이사는 환영사에서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더욱 찬란하게 온다"며 고난을 이겨낸 동포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했습니다.

출처: 제천단양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