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칼럼


[교장칼럼]600번의 회의, 그리고 우리들의 민주주의

600번의 회의, 그리고 우리들의 민주주의

제천간디학교에는 ‘가족회의’라는 특별한 시간이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진행되는 이 시간은 학생회가 주도하는 학생자치 영역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교사들도 함께 참여하기에 온전한 학생만의 자치활동이라고 하기엔 어색할 수 있으나, 정말 말 그대로 각 가정에서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가족회의’를 하는 것처럼 학교 구성원 모두의 삶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결정이 이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지난 5월 1일, 드디어 600회 가족회의가 열렸습니다. 방학이나 체험학습 등 회의를 할 수 없는 시간을 제외하면 1년에 대략 25번 정도 열리는데, 2002년 제천으로 학교를 옮기며 카운트를 시작한 지 24년 만에 600번째 회의를 맞이한 것입니다.

제천간디학교는 음주, 흡연, 폭력을 제외한 핸드폰 사용 시간, 기숙사 음식 반입, 외출 범위 같은 비교적 큰 규칙부터 현관 슬리퍼 갈아신는 곳 결정처럼 아주 소소한 생활 규칙까지 모두 가족회의를 거쳐 결정합니다. 이 가족회의는 규칙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각종 건의와 알림 같은 소통의 자리이기도 하고 학생회 주도로 이루어지는 각종 규칙의 집행 사항에 대한 보고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는 교장도 1표, 학생도 똑같은 1표이고 알림이나 건의사항이 있다면 교장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사전에 학생회장에게 요청하여 발언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올해 가족회의의 가장 큰 중심 사안은 학생회가 제안한 ‘리부트 프로젝트(reboot project)’였습니다. 학생회는 자신들의 공약이었던 ‘리부트 프로젝트’를 실현하기 위해 학기 초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교사회를 찾아와 취지를 설명하고, 양육자들에게 설문을 돌리며, 학생들과 수차례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본 안건을 상정하기 전에도 공청회 성격의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2주간 핸드폰과 야식에 관한 무규칙 기간을 가져보고, 그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적합한 규칙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취지였습니다. 599회 회의에서 안건이 통과되었고, 601회 회의에서는 무규칙 기간의 종료를 선언하며 아이들이 직접 겪은 솔직하고 적극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자기 의지대로 꾸리는 경험을 시작하는 것은 과연 몇 살부터 가능할까요? 일반적인 학교생활에서 자기 생활과 관련한 결정을 스스로 해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민주적 절차에 따라 토론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경험 없이 어른이 된 많은 이들이 생활 속의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저절로 민주시민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스스로 세운 절차적 정당성이나 합의를 무시하고, 내 생각만 정답이라 우기며 비선 실세나 밀실 합의 같은 일들이 높은 분들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완성되려면, 학생들이 학창 시절부터 삶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해 보고 그 실효성과 어려움을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결코 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공화정이나 프랑스 대혁명을 백날 공부하는 것보다, 내 손으로 뽑은 학생회장과 우리가 직접 만든 규칙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학생들에게 그런 결정을 맡기면 아이들이 이상한 결정을 내리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하려 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는 학생들이 미성숙한 존재라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믿지 못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때론 서툰 생각과 표현이 있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성숙한 판단과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이 아이들을 더 성숙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설혹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생긴다 해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민주시민을 얻으려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훗날 어른 되어 더 큰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 학생 때 성장하며 배우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저렴합니다.
민주 시민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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