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칼럼
[교장칼럼]체험학습에 관한 지금의 소란함이 우리 교육의 문제를 들춰보게 만들까?
체험학습에 관한 지금의 소란함이 우리 교육의 문제를 들춰보게 만들까?
요즘 체험학습을 가지고 말들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사고와 그 사고의 책임을 교사에게 지우는 법원의 판결이 일선 교사들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각종 점검의 책임이 담당교사 몫으로 전가되고 그에 수반하는 많은 문서 까지 더해지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대통령님이 점검을 지시했으니 일선 교사에게 지워지던 과도한 책임의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적 분위기도 사고의 책임을 일선 교사에게 묻는 것은 과하다는 분위기이고 법령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사안을 바로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교사에게 전가되던 과도한 책임 문제가 해결되면 현장학습의 문제가 모두 해결될까요? 책임의 문제를 포함해 함께 이야기되던 점검 비용 서류 작업 등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공교육의 체험학습은, 특히 고학년의 체험학습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체험학습이 왜 필요한지 학교도 학생도 부모도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런 학습이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대학입시를 위한 무한경쟁의 정글입니다. 단위 학교 내에서의 경쟁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해 태어난 수십만 명 단위의 경쟁입니다. 체험학습이, 수학여행이 수능에, 입시에 도움이 되는 입시 제도가 생기지 않는다면 체험학습은 결국 서서히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옆 학교는 그 시간에 공부한다는데 우리만 체험학습 다녀오는 것은 한가한 소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몇몇 분들 중 그래도“애들이 공부하는 기계도 아닌데 수학여행처럼 한 번쯤 콧바람이라도 쐬고 와야 살지”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온정어린 생각도 어쩌면 근본적으로 아이들이 입시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바람 쐬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경쟁 구도 속 효율의 문제로 접근하는 생각일 수 있습니다.
학교 밖 교육은 교실에서의 교육과는 다른 성장을 만듭니다. 배움은 교실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은 제천간디학교 30년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제천간디학교에서는 6월이면 ‘움직이는 학교’라는 학교 밖 체험학습을 진행합니다. 학년에 따라 2~4주 정도의 시간을 학교가 아닌 사회에 나가 각자의 배움을 만들어나갑니다. ‘움직이는 학교’라는 이름처럼 제천간디학교는 배움이 교실에만 있지 않다고 확신합니다. 이를 위해 3월 학기 시작과 동시에 준비가 시작됩니다. 한 학년 18명 내외의 친구들과 교사3인이 함께 그 해의 움직이는 학교를 준비합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나이의 아이들이 다니는 6년제 제천간디학교에서는 학년마다 주어지는 대주제가 있고 이 대주제에 따라 움직이는 학교의 세부내용들이 결정됩니다. 부모 곁을 떠나 기숙학교에 처음 입학한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간디에서 둥지 틀기’가 대주제입니다. 학교가 있는 제천 덕산지역을 중심으로 자연, 역사, 사람, 문화, 예술, 마을 등을 공부하며 간디학교에 스며듭니다. 같은 학년 또래 친구들과 풍물을 배우며 예술 활동을 통한 공동체의 협업과 일체감도 배우게 됩니다. 1학년은 우리 간디학교 문화에 잘 녹아 들고 또래 문화를 잘 형성하는 것이 주요 과제인 것입니다. 중2 아이들 주제는 ‘너와 나에 대한 이해’입니다. 나의 내면을 잘 바라볼 수 있고 관심의 대상이 나에게서 너에게로 확장되길 기대합니다. 이를 위한 도구로 연극을 활용합니다. 연극단체를 찾아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내고 확장해 대본을 만들어 연극 형태로 무대에 올리는 경험을 합니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나를 바라보는 힘을 기르고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배웁니다. 3학년이 되면 주제는 ‘세상 바라보기’로 확장됩니다. 활동 장소는 보통 제주도입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이에 대한 개발과 보존의 논리를 직접 체험하고 우리의 아픈 역사인 4.3과 세월호에 관해서도 공부합니다. 프로그램 후반부엔 같은 또래의 다른 학교 학생들과의 교류를 위해 작은 단위로 나누어 다른 대안학교를 1주일간 체험합니다. 4학년이 되면 주제는 ‘가치세우기’입니다. 활동 소주제를 결정하고 장소를 찾고 섭외하는 모든 활동이 학생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복직 투쟁현장을 찾아가 노동의 가치를 공부하거나 환경보호단체를 찾아가 환경 관련 공부를 하기도 하고 여의도 국회와 광주 5.18묘역을 넘나들며 민주주의 현장을 누비기도 합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관심의 영역을 나에게서 너에게로 우리에서 사회로 세상으로 넓혀 나가고 프로그램 기획과 활동의 주도 또한 교사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그 주체를 이동시켜 나갑니다. 이렇게 배움을 확장해 나간 제천간디학교 아이들은 고2가 되면 3~4주의 사회체험학습을 단독으로 실행합니다. ‘사회에 첫발 딛기’라는 이름으로 3~4주 동안 자신이 경험해보고 싶은 회사, 단체를 직접 섭외하여 경험하고 돌아옵니다. 모르는 타인에게 전화해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자신을 설명하고 기회를 요구하기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모든 제천간디학교 학생들은 이 과정을 잘 수행합니다. 그렇게 고3이 되면 이 사회체험학습은 14주짜리 대형 프로젝트로 확대됩니다. 다른 학년이 학교에서 1학기를 보내는 동안 고3인 6학년 아이들은 6학년 시작과 동시에 사회체험학습을 나가게 됩니다. 고2 2학기부터 사회체험학습을 준비해 겨울방학 전에 체험학습 장소와 주거 계획 등을 결정하고 각 현장의 상황에 맞게 겨울부터 혹은 봄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1~4학년은 학년 단위의 성과 발표와 정리 공부로 마무리하지만 5, 6학년의 개별 사회 체험 프로젝트는 그 계획과 준비 그리고 마무리 과정을 개별 발표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개별 프로젝트의 개요를 설명하고 교사와 학생들의 질문을 통해 자신의 준비 정도를 점검받습니다. 그렇게 다녀온 학생들은 다시 전교생과 부모님까지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보통 이틀에 걸쳐 진행되는 결과 발표에는 전 간디학교 구성원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받아줬던 현장 사람들까지 참여할 정도로 많은 관심과 애정어린 소통의 시간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런 체험학습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번의 ‘움직이는 학교’를 진행하기 위해선 학생도 교사도 그리고 부모님들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 길 위의 과정들이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배움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을까? 교사들은 고민하고, 아이들은 이 배움의 주체로 서기 위해 노력합니다. 매주 회의하고 수업하고 조사하는 과정이 아이들에게는 배움이고 그 실행을 통해 배움의 주체가 되어 갑니다. 부모님들은 도움을 주기 위해 타지에서의 식사를 지원하고 아이들을 응원하며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줍니다. 제천간디에서 체험학습은 한나절의 콧바람이 아닙니다. 진정한 배움의 중심구조로 우뚝 서 있습니다.
어떻게 제천간디학교는 이런 학교 밖 배움이 가능할까요? 배움의 목적이 입시가 아니기에 가능합니다. 점수와 등수로 교육의 성과를 측정하고 그 결괏값으로 대학을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학교 밖 배움이 주는 성장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경쟁에서의 불리함보다 성장의 가치를 더 높게 생각하는 학생과 부모여야만 가능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헌신적인 교사가 필요합니다. 짧지 않은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 먹고 자고 공부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행사를 통해 숙식을 해결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한 학교 사정에 때론 아이들과 같은 방을 써야 하고 도시락을 준비해 모두의 점심을 해결하고 직접 승합차를 운전하며 퇴근 시간도 없이 밤늦은 시간까지 아이들의 배움을 챙기려면 체력도 필요하고 아이들에 대한 애정도 커야 하며 스스로 교육운동가의 정체성으로 이 교육이 옳다는 강한 믿음도 필요합니다.
공교육에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교육을 위한 고민이 있어도 실행할 수 없는 구조가 더 문제일 것입니다. 학생 부모 그리고 지금의 교사들까지 경쟁교육이 절대 진리라는 혹은 그 구조가 너무 탄탄해 어떻게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이 정상화하려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대학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 세상, 경쟁의 유불리가 아니라 영혼의 성장이 진정한 교육의 목적으로 설 수 있는 그런 세상 그래야 따뜻한 시선으로 한 아이의 성장을 온전히 응원하며 지켜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본이 교육을 통해 계급을 만들고 있는지 모를 오늘은 체험학습의 필요를 묻고 있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미래는 학교의 필요를 묻고 있을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