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칼럼


[교장칼럼]신입생이 들어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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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20명이 들어왔다.  26년도 역시 어김없이 시끌시끌하다. 계절학교 예비학교 등 여러 통로를 통해 서로 얼굴을 익혔지만 막상 같이 먹고 자고 배우는 기숙사 학교의 생활은 이제 겨우 한달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우리 배움의 방식 또한 아이들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일반 공교육에서처럼 교실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혼자 공부하는 방식이 아니고 모둠으로 함께 활동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입장을 정하고 찬반을 이야기 해야 할 일이 많은 간디학교이다 보니 처음 경험하는 신입생들은 언제나 시끌시끌하다. 


아이 중엔 이런 사회생활이 서툰 경우가 있다. 가정에서는 외동이고 초등학교에서는 좁은 친구 관계만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그나마 오랜 친구가 편한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 본지도 너무 오래다. 외동으로 자란 가정에서 전적으로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고 엄마 혹은 아빠와의 관계 또한 입체적이지 않고 단편적일 확률이 높다. 이런 친구들이 간디학교에 처음 들어와서 새로운 친구 선배 선생님과 관계를 맺는 과정은 그 자체로 커다란 숙제이다.


간혹 초등학교에서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내향형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필요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낯선 타인들에게 자신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모두에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들은 아프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니 긴장도 될 것이고 다른 아이들은 잘 지내고 즐거워 보이는데 나만 어설픈 것 같아 신경도 쓰인다. 그러니 몸이 아픈 것으로 나타난다. 괜히 배가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이 정도면 진짜 아픈지 가짜로 아픈지 중요하지 않다. 간디 선생님들은 이렇게 아픈 아이를 차에 태우고 함께 병원을 간다. 면에 있는 의원까지 차로 10분 남짓 진료를 기다리는데 10분, 약 사러 가서 10분, 마침 동네 장날이면 뜨끈한 어묵 하나 같이 먹는데 10분, 학교로 돌아오는데 또 10분이다. 이렇게 저렇게 한 시간 남짓 아이와 이야기 나누는 것이 그 아이에겐 치료고 적응이다.

 

어떤 아이들은 슬프다.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과정에서 자기만 손해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도 보고 싶고 아무튼 서럽고 슬프다. 이렇게 서럽고 슬픈 아이들은 혼자 조용히 울기보단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큰 소리로 울기도 한다. 내가 지금 힘들고 억울하다고 이야기하려는 듯이. 그러면 또 선생님은 이렇게 우는 아이 데리고 가까운 산책을 하러 가거나 조용한 방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 이야기를 들어 달라 우는 아이들은 막상 이야기할 자리가 만들어 져도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한다. 그렇게 말로 잘 풀어낼 수 있었으면 울기 전에 이야기했겠지.... 그래도 이야기를 할 수 있게 기다려 줘야 한다. 그렇게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어떤 아이들은 화를 낸다. 학교는 집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데로 모든 일이 결정되지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은 협상의 연속일 수 있다. 모든 것을 양보만 할 수도 없고 내가 원하는 데로만 할 수도 없다. 이게 뜻대로 잘 안되면 화를 내는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려 한다. 아직 애기라 그렇다. 화를 내는 방식으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금방 깨닫는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화를 내는 방식을 자주 사용하면 얻는 것 없이 관계만 나빠진다. 특히 선배들과의 관계에서는 사용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 거기에 선생님과의 진지한 면담 혹은 학생들이 운영하는 평화정착위원회 위원과 만남까지 가게 되면 화내는 방식으로 얻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금방 배우게 된다.

  

어떤 아이들은 과한 친절을 베푼다. 칭찬을 기대하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어한다. 어떤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과하게 사주거나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과한 친절만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없다. 내가 목적을 가지고 베푼 친절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을 때 아이들은 실망한다. 이런 관계가 반복되면 본인도 상대도 건강한 관계로 진전되지 않는다. 간디에서 아이들은 비교적 빠르게 과한 친절의 본질을 깨닫는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내가 경험한 간디 신입생들은 모두 이런 저런 방법으로 관계를 조율하며 성장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어쩌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런 관계의 역학에 관해 고민하거나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한국의 학교는 대학까지 포함하여 이런 관계의 역동을 경험 할 수 없는 구조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 없이 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관계는 풀기 어려운 숙제일 수 밖에 없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과 하루의 대분분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직장에서, 너무 사랑해 결혼했지만 나와 너무 다른 배우자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자식마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나마 그런 어려움을 경험하고 해결하기 위해 명상을 배운다거나 MBTI, 에니어그램 같은 도구를 공부하며 다른 사람, 타인과 가족을 이해하려 드는 것을 많이 본다. 우리 사회가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에 대해 더 경험하게 하고 공부하게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간디학교에서 이 모든 관계의 역학을 경험하며 성장한 아이들을 보면 현명해 보일 때가 많다. 간디학교 100여명의 아이들이 모두 사이 좋아 완벽한 공동체 일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서로의 간격을 얼마로 유지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정말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간혹 유별난 행동으로 눈에 띄는 아이들이 나타났다가도 금방 균형점이 잡히고 일이 해결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 균형을 위해 물 밑에서 열심히 발 젓고 있는 교사들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이제는 오랫동안 쌓여온 간디  '문화의 힘'이 아이들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올봄의 시끌벅적함도 결국 아이들이 서로의 거리를 재고 마음의 근육을 키워가는 귀한 소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