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학기를 마치며 _ 양진영
이 글을 읽는 분들은 2026년 상반기 무탈하게 잘 지내셨나요? 바쁘고 정신없던 1학기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 저의 이번 학기는 어땠는지 글로 짧게나마 소개해볼까 합니다.
월요일에는 1학년 농사 수업을 함께했습니다. 농사 수업을 할 교사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저도 농사를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농사라고 하기에는 사실 좀 찔립니다. 텃밭 가꾸기가 더 적절해 보입니다. 시골 대안학교에 왔는데 땅은 만져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작년에 첫 팔보채 담임을 맡으며 학급 농사에 참여했는데 작물들이 계속 자라는 게 귀엽고 재밌었습니다. 작물의 생장을 위해서 잡초를 뽑거나 상추를 뜯을 때 흰색 진액이 나올 때면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래도 상추가 계속 화수분처럼 자라는 게 신기해서 서울 집에도 가져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1학년 농사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키우고 싶은 작물 씨앗을 가져와서 자신의 텃밭을 만들기도 하고, 함께 상추, 깻잎, 고추, 토마토를 심기도 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씨앗을 개인적으로 가져왔을 때 학생들이 농사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 같아 놀랐습니다. 밭을 갈고,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지지대를 설치했습니다. 처음에는 선선했던 날씨가 봄을 맞아 비가 오기도 하고, 여름을 맞아 온몸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농사 수업은 저에게 업무이기도 하지만 좋은 기운을 채워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날씨를 느낄 수 있고 생글생글 1학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요. 학생들이 잡초 뽑기에 금방 싫증을 느끼고 나무그늘 아래에서 쉬거나 교사에게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는 순간은 힘들었지만 그것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밭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농사 일지에는 언제나 농사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지만 1학년 친구들은 항상 수업 시작 몇 분 전부터 왓슈 앞에 나와 장화를 신고 기다렸습니다. 사실은 농사 수업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농사 수업을 시작할 때는 꽤 큰 포부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농사를 왜 해야 되는지 모르는 재미없고 힘든 일로 기억하기보다 땅과 혹은 세상과 연결되는 한 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농사에 대해 저는 잘 모르니 수진샘이 전체적으로 수업 진행을 하셨지만, 저도 수업의 한 부분을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양한 주제로 5분 쪽강의를 진행했습니다. 24절기, 미생물과 똥, 빗물, 농사속담, GMO와 건강한 먹거리, 기후위기와 농사, 자급자족의 삶 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어서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기억에 남을지는 모르겠으나 작물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상상하고 자연의 순환이 신비롭다는 걸 아이들과 함께 느끼고 싶었습니다. 근데 막상 준비하다보니 제가 어디서 주워들은 것만 많고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해야할 것 같아요.
농사 이야기로 한 페이지를 가득 써버렸습니다. 농사에 제가 이렇게 관심이 있었나 싶네요.. 이번에는 성이샘과 함께 팔보채 농사 총괄도 맡았습니다. 그것 역시 맡을 교사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제가 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수요일 점심시간을 쪼개가며 적환무와 시금치, 상추를 길렀습니다. 저는 학급 농사 역시 학생들이 말로는 싫다고 하지만 막상 당번 차례가 되면 열심히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제가 잘못 느낀 것일까요?^^ 이 시간 역시 교무실에서 나와 햇빛을 쐬고 학생들과 대화하고 땅을 만질 수 있어서 저에게 업무이면서도 저를 채워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학생들과 정말 많은 양의 상추 씻기를 함께했던 시간도 생각나네요. 저희가 기른 작물들은 조리사 선생님들의 마술을 통해서 저희의 밥상에 올라왔습니다. 적환무 샐러드는 물렁물렁한 식감이 별로였고 시금치 무침과 상추는 맛있었습니다. 우리가 길러서 저는 뿌듯한 마음이 들어 더 맛있었는데 학생들도 더 맛있었을까요?
화요일에는 학급시간과 학년시간이 있습니다. 학급시간에는 김치전 만들기, 덕산 나들이, 학급캠핑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서로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는 함께 먹어야할까요?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또 뭔가를 같이 만들어먹는 게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쉽고 편안한 방법 같기도 합니다. 학급시간은 저에게 여러 질문을 던져줍니다. 함께 만들어먹는 시간이 소중하다면 무엇을 만들어 먹는 게 좋을까? 만들어먹을 때 학교에서 지양하는 제품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을까? 아이들과 새롭게 해볼 수 있는 활동은 뭐가 있을까?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학생과 교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데 우리 모두 바쁜 일상에 치여 학급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성찰해봅니다. 물론 양과 사는 남자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러 활동들은 즐거웠습니다. 김치전 한 판이 부쳐졌을 때 아이들의 수많은 젓가락이 달려들어 김치전이 10초 안에 사라지는 순간, 덕산에서 학교까지 걸어올 때 아이들의 녹초가 된 표정, 학급캠핑 간 날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게임을 하던 순간 등 여러 순간들이 기억납니다. 2학기 때는 아이들과 조금 더 다양한 활동을 나누어 봐야겠다 싶습니다.
학년시간도 즐거웠습니다. 저는 이번에 2학년을 맡아 1학기동안 ‘너와 나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삶에 기억이 남는 순간을 에세이로 써보기, 친구 인터뷰하기, 영화 명장면 연기해보기, 함께 저녁 만들어먹기, 우리만의 운동회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학생들도 이런 활동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움 중 하나라는 걸 이해했을까요? 저는 학년시간을 진행하면서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모두가 조용하게 내 삶의 한 순간을 떠올리며 집중해서 글을 쓰는 모습도, 친구에게 물어본 질문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개성을 담은 형형색색 ppt를 만들어와 발표하던 모습도, 무대 위에서 수줍어할 것 같은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연기에 몰입하는 모습도 다 좋았습니다. 2학기 때도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려 합니다.
수요일에는 팔보채 교사회의와 전체 교사회의가 있습니다. 조그만 학교에 뭐 이렇게 함께 이야기하고 결정해야할 일이 많은지.. 그만큼 우리 학교 교사들은 다 진심으로 이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하는 교육과정과 행사 등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 그 의미를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하는 과정에서 우려되는 점은 없는지 등 여러 논의를 진행합니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건 늘 힘들지만 그래도 서로의 생각을 맞춰나가는 소중한 시간일 것입니다. 교사들에게도 회의하는 시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움을 얻는 한 순간입니다.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듣고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는 과정이 매일 매주 반복됩니다. 꼭 회의만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하는 다른 여러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우리 학교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깨달음을 얻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는 그런 좋은 학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목요일에는 학급독서와 페미니즘 수업, 학생들과 함께하는 책모임이 있었습니다. 작년 설문에 읽쓰말 기초 페미니즘 수업을 열어주면 좋겠다는 응답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 일상에서는 꽤 선명한 페미니스트인데 왜인지 학교에서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걸 주저했던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이 저에게는 저의 삶을 더 큰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해준 소중한 이론이자 실천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소중한 배움인 만큼 다른 사람들과도 오해 없이 잘 나누고 싶은데 그렇게 준비할 의지와 여력이 없었다는 핑계를 조금 대봅니다. 만약 한다면 잘 짜여진 ‘좋은 수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이제 조금 귀찮아졌습니다. 듣고 싶은 학생이 있다는데 뭐라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열었습니다. 사실 읽쓰말 수업이 더 필요해서 수업을 연 것도 있지만 저도 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청소년의 시선에서 바라본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같이 읽어도 좋겠다 싶어서 [걸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학생들이 2명밖에 신청하지 않아서 편하게 소모임 느낌으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서로의 진솔한 경험이나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는 그래도 수업을 들었으면 개인 질문 하나씩은 가져가야한다는 생각에 각자 자신의 질문을 정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조금 어려웠나 봅니다. 물론 학생들은 잘 해냈지만요. 다음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도 좋겠다 싶습니다. 꼭 책이 아니어도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학교에서 캠페인을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페미니즘을 주제로 수업을 연 첫 시도였는데 학생들이 잘 참여해줘서 저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에는 5학년 학생 2명과 함께 책모임을 했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떤 동사의 멸종]을 읽었습니다. 이 시간도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학생동에 모여서, 학교 앞 정자에 앉아서 책을 매체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번 학기 정말 많은 책을 읽느라(뒤에 나오지만 금요일에는 책모임 수업을 열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근데 또 그 책들이 생각해볼 질문을 던져주고 지금 내 삶을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책을 읽을 때면 모르는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달받는 묘한 벅참을 느꼈습니다. 이 시간에는 제가 교사인 것을 잊고 친구들과 편하게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금요일이 되었습니다. 주말이 찾아옵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금요일에는 학급회의와 책모임 수업, 가족회의가 있었습니다. 이번 학급회의에서는 집행부가 열일해준 덕분인지 논의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1학년 친구들도 자기 의견을 잘 이야기하고 학생들끼리 여러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오전에는 읽쓰말 기초로 책모임을 열었습니다. 7명의 학생들과 함께했는데 이 시간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1주는 학생들과 책을 읽고, 1주는 책을 나누었습니다. [자몽살구클럽], [88번 버스의 기적], [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 3권을 읽었습니다. 이번에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성향인지, 비슷한 또래들이 모여서인지 학생들은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돌아가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너도 나도 먼저 이야기하려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은 경청도 잘하고 생각을 나누다가 저멀리 다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여러 모습이 다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책은 막장이고 어떤 책은 전혀 이해가 안 된다고 했지만 저는 모든 책이 다 생각해볼 지점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연결되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사실 저도 책에 대해 꼼꼼히 음미할 시간이 없어서 책을 완벽하게 해석하겠다는 큰 욕심은 버리고 솔직하게 제가 느낀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다양한 7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다양한 관점으로 책을 해석하는 걸 보니 역시 우리 모두는 이렇게 다르구나. 이래서 함께 살아가는 게 어렵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한주가 끝났습니다. 중간중간 학생들의 논문 지도 면담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학교 마케팅을 주제로 교사들끼리 모여서 연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과 중에는 수업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저녁에 학교에 남아 수업 준비를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학생들의 논문 지도 면담을 할 때면 ‘얘네는 얼마나 힘들까. 나라도 논문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신기하게도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갑니다. 길을 잃었을 때 조금만 방향을 잡아주고 열심히 응원과 잔소리를 같이 하면 결국 자신의 몫을 해냅니다. 솔직히 학생들이 제가 성인이 되고 쓴 논문보다 잘 쓰는 것 같습니다.
저는 평화정착위원회라는 자치 활동 담당교사도 맡았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 간의 갈등이나 다툼이 있을 때 평정위에서 사안을 알아보고 해당 학생들과 협의하여 갈등 중재와 회복 과정을 진행합니다. 말은 아름답지만 과정은 어렵습니다. 일단 평정위 학생들도 정말 바빠서 정기회의 시간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도 각종 수업과 자치활동, 동아리활동 등으로 알찬 일과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모여 사안 진행 과정을 확인했습니다. 평정위원들이 학생들과 만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없는지 확인하고, 학생들이 성찰할 수 있는 평화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것을 실행하고, 평정위원들이 지치지 않도록 독려하는, 1교시 직전까지 회의하는 정신없는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언젠가 돌봄은 참 아름답고 눈부시면서도 어렵고 고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한 일상 속에서도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계속 살아가는 거겠죠? 2학년 학생들이 움직이는 학교 때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6학년 학생들이 사회체험학습을 마친 후 자신이 얻은 배움을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순간도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모여 빛나는 감동을 만들어낸다고 믿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에세이를 쓰라고 하니까 쓰기 싫었는데(^^) 이렇게 저의 1학기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감사하네요. 저는 제 일상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학기 중에는 지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돌이켜보니 즐거웠던 기억이 많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저는 잘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짧게 쓰려고 했는데 네 바닥을 써버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화이팅!
2026년 1학기를 마치며 _ 양진영
이 글을 읽는 분들은 2026년 상반기 무탈하게 잘 지내셨나요? 바쁘고 정신없던 1학기가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 저의 이번 학기는 어땠는지 글로 짧게나마 소개해볼까 합니다.
월요일에는 1학년 농사 수업을 함께했습니다. 농사 수업을 할 교사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저도 농사를 배워보고 싶었습니다. 농사라고 하기에는 사실 좀 찔립니다. 텃밭 가꾸기가 더 적절해 보입니다. 시골 대안학교에 왔는데 땅은 만져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작년에 첫 팔보채 담임을 맡으며 학급 농사에 참여했는데 작물들이 계속 자라는 게 귀엽고 재밌었습니다. 작물의 생장을 위해서 잡초를 뽑거나 상추를 뜯을 때 흰색 진액이 나올 때면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래도 상추가 계속 화수분처럼 자라는 게 신기해서 서울 집에도 가져가서 가족들과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1학년 농사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키우고 싶은 작물 씨앗을 가져와서 자신의 텃밭을 만들기도 하고, 함께 상추, 깻잎, 고추, 토마토를 심기도 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씨앗을 개인적으로 가져왔을 때 학생들이 농사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 같아 놀랐습니다. 밭을 갈고,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고, 지지대를 설치했습니다. 처음에는 선선했던 날씨가 봄을 맞아 비가 오기도 하고, 여름을 맞아 온몸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농사 수업은 저에게 업무이기도 하지만 좋은 기운을 채워주는 시간이었습니다. 날씨를 느낄 수 있고 생글생글 1학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요. 학생들이 잡초 뽑기에 금방 싫증을 느끼고 나무그늘 아래에서 쉬거나 교사에게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는 순간은 힘들었지만 그것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밭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농사 일지에는 언제나 농사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지만 1학년 친구들은 항상 수업 시작 몇 분 전부터 왓슈 앞에 나와 장화를 신고 기다렸습니다. 사실은 농사 수업을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농사 수업을 시작할 때는 꽤 큰 포부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농사를 왜 해야 되는지 모르는 재미없고 힘든 일로 기억하기보다 땅과 혹은 세상과 연결되는 한 순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농사에 대해 저는 잘 모르니 수진샘이 전체적으로 수업 진행을 하셨지만, 저도 수업의 한 부분을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양한 주제로 5분 쪽강의를 진행했습니다. 24절기, 미생물과 똥, 빗물, 농사속담, GMO와 건강한 먹거리, 기후위기와 농사, 자급자족의 삶 등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짧은 시간이어서 아이들에게 얼마만큼 기억에 남을지는 모르겠으나 작물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상상하고 자연의 순환이 신비롭다는 걸 아이들과 함께 느끼고 싶었습니다. 근데 막상 준비하다보니 제가 어디서 주워들은 것만 많고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해야할 것 같아요.
농사 이야기로 한 페이지를 가득 써버렸습니다. 농사에 제가 이렇게 관심이 있었나 싶네요.. 이번에는 성이샘과 함께 팔보채 농사 총괄도 맡았습니다. 그것 역시 맡을 교사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제가 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수요일 점심시간을 쪼개가며 적환무와 시금치, 상추를 길렀습니다. 저는 학급 농사 역시 학생들이 말로는 싫다고 하지만 막상 당번 차례가 되면 열심히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제가 잘못 느낀 것일까요?^^ 이 시간 역시 교무실에서 나와 햇빛을 쐬고 학생들과 대화하고 땅을 만질 수 있어서 저에게 업무이면서도 저를 채워주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학생들과 정말 많은 양의 상추 씻기를 함께했던 시간도 생각나네요. 저희가 기른 작물들은 조리사 선생님들의 마술을 통해서 저희의 밥상에 올라왔습니다. 적환무 샐러드는 물렁물렁한 식감이 별로였고 시금치 무침과 상추는 맛있었습니다. 우리가 길러서 저는 뿌듯한 마음이 들어 더 맛있었는데 학생들도 더 맛있었을까요?
화요일에는 학급시간과 학년시간이 있습니다. 학급시간에는 김치전 만들기, 덕산 나들이, 학급캠핑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서로 친목을 다지기 위해서는 함께 먹어야할까요?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데 또 뭔가를 같이 만들어먹는 게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쉽고 편안한 방법 같기도 합니다. 학급시간은 저에게 여러 질문을 던져줍니다. 함께 만들어먹는 시간이 소중하다면 무엇을 만들어 먹는 게 좋을까? 만들어먹을 때 학교에서 지양하는 제품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함께 참여할 수 있을까? 아이들과 새롭게 해볼 수 있는 활동은 뭐가 있을까?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는 학생과 교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데 우리 모두 바쁜 일상에 치여 학급시간을 휴식시간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나 성찰해봅니다. 물론 양과 사는 남자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러 활동들은 즐거웠습니다. 김치전 한 판이 부쳐졌을 때 아이들의 수많은 젓가락이 달려들어 김치전이 10초 안에 사라지는 순간, 덕산에서 학교까지 걸어올 때 아이들의 녹초가 된 표정, 학급캠핑 간 날 동그랗게 둘러앉아서 게임을 하던 순간 등 여러 순간들이 기억납니다. 2학기 때는 아이들과 조금 더 다양한 활동을 나누어 봐야겠다 싶습니다.
학년시간도 즐거웠습니다. 저는 이번에 2학년을 맡아 1학기동안 ‘너와 나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신의 삶에 기억이 남는 순간을 에세이로 써보기, 친구 인터뷰하기, 영화 명장면 연기해보기, 함께 저녁 만들어먹기, 우리만의 운동회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학생들도 이런 활동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움 중 하나라는 걸 이해했을까요? 저는 학년시간을 진행하면서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모두가 조용하게 내 삶의 한 순간을 떠올리며 집중해서 글을 쓰는 모습도, 친구에게 물어본 질문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개성을 담은 형형색색 ppt를 만들어와 발표하던 모습도, 무대 위에서 수줍어할 것 같은 아이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연기에 몰입하는 모습도 다 좋았습니다. 2학기 때도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려 합니다.
수요일에는 팔보채 교사회의와 전체 교사회의가 있습니다. 조그만 학교에 뭐 이렇게 함께 이야기하고 결정해야할 일이 많은지.. 그만큼 우리 학교 교사들은 다 진심으로 이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하는 교육과정과 행사 등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 그 의미를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하는 과정에서 우려되는 점은 없는지 등 여러 논의를 진행합니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건 늘 힘들지만 그래도 서로의 생각을 맞춰나가는 소중한 시간일 것입니다. 교사들에게도 회의하는 시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배움을 얻는 한 순간입니다.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듣고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는 과정이 매일 매주 반복됩니다. 꼭 회의만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하는 다른 여러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기도 하고 기분이 상하기도 하지만 우리 학교는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깨달음을 얻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는 그런 좋은 학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목요일에는 학급독서와 페미니즘 수업, 학생들과 함께하는 책모임이 있었습니다. 작년 설문에 읽쓰말 기초 페미니즘 수업을 열어주면 좋겠다는 응답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제 일상에서는 꽤 선명한 페미니스트인데 왜인지 학교에서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걸 주저했던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이 저에게는 저의 삶을 더 큰 관점에서 다시 해석하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해준 소중한 이론이자 실천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게 소중한 배움인 만큼 다른 사람들과도 오해 없이 잘 나누고 싶은데 그렇게 준비할 의지와 여력이 없었다는 핑계를 조금 대봅니다. 만약 한다면 잘 짜여진 ‘좋은 수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이제 조금 귀찮아졌습니다. 듣고 싶은 학생이 있다는데 뭐라도 한 번 해보자는 생각에 열었습니다. 사실 읽쓰말 수업이 더 필요해서 수업을 연 것도 있지만 저도 하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청소년의 시선에서 바라본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같이 읽어도 좋겠다 싶어서 [걸 페미니즘]이라는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학생들이 2명밖에 신청하지 않아서 편하게 소모임 느낌으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서로의 진솔한 경험이나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는 그래도 수업을 들었으면 개인 질문 하나씩은 가져가야한다는 생각에 각자 자신의 질문을 정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시간이 아이들에게 조금 어려웠나 봅니다. 물론 학생들은 잘 해냈지만요. 다음에는 또 다른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도 좋겠다 싶습니다. 꼭 책이 아니어도 영화를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학교에서 캠페인을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도 페미니즘을 주제로 수업을 연 첫 시도였는데 학생들이 잘 참여해줘서 저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후에는 5학년 학생 2명과 함께 책모임을 했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어떤 동사의 멸종]을 읽었습니다. 이 시간도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학생동에 모여서, 학교 앞 정자에 앉아서 책을 매체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번 학기 정말 많은 책을 읽느라(뒤에 나오지만 금요일에는 책모임 수업을 열었습니다..) 힘들었습니다. 근데 또 그 책들이 생각해볼 질문을 던져주고 지금 내 삶을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책을 읽을 때면 모르는 사람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달받는 묘한 벅참을 느꼈습니다. 이 시간에는 제가 교사인 것을 잊고 친구들과 편하게 서로의 생각과 삶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금요일이 되었습니다. 주말이 찾아옵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금요일에는 학급회의와 책모임 수업, 가족회의가 있었습니다. 이번 학급회의에서는 집행부가 열일해준 덕분인지 논의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1학년 친구들도 자기 의견을 잘 이야기하고 학생들끼리 여러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오전에는 읽쓰말 기초로 책모임을 열었습니다. 7명의 학생들과 함께했는데 이 시간도 정말 즐거웠습니다. 1주는 학생들과 책을 읽고, 1주는 책을 나누었습니다. [자몽살구클럽], [88번 버스의 기적], [여름밤 해변의 무무 씨] 3권을 읽었습니다. 이번에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성향인지, 비슷한 또래들이 모여서인지 학생들은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돌아가면서 이야기했습니다. 너도 나도 먼저 이야기하려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은 경청도 잘하고 생각을 나누다가 저멀리 다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여러 모습이 다 좋았습니다. 아이들은 어떤 책은 막장이고 어떤 책은 전혀 이해가 안 된다고 했지만 저는 모든 책이 다 생각해볼 지점이 있어서 좋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연결되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근데 사실 저도 책에 대해 꼼꼼히 음미할 시간이 없어서 책을 완벽하게 해석하겠다는 큰 욕심은 버리고 솔직하게 제가 느낀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다양한 7명의 아이들이 모여서 다양한 관점으로 책을 해석하는 걸 보니 역시 우리 모두는 이렇게 다르구나. 이래서 함께 살아가는 게 어렵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저의 한주가 끝났습니다. 중간중간 학생들의 논문 지도 면담도 하고, 점심시간에는 학교 마케팅을 주제로 교사들끼리 모여서 연수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과 중에는 수업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어서 저녁에 학교에 남아 수업 준비를 하는 날도 많았습니다. 학생들의 논문 지도 면담을 할 때면 ‘얘네는 얼마나 힘들까. 나라도 논문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근데 신기하게도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갑니다. 길을 잃었을 때 조금만 방향을 잡아주고 열심히 응원과 잔소리를 같이 하면 결국 자신의 몫을 해냅니다. 솔직히 학생들이 제가 성인이 되고 쓴 논문보다 잘 쓰는 것 같습니다.
저는 평화정착위원회라는 자치 활동 담당교사도 맡았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생들 간의 갈등이나 다툼이 있을 때 평정위에서 사안을 알아보고 해당 학생들과 협의하여 갈등 중재와 회복 과정을 진행합니다. 말은 아름답지만 과정은 어렵습니다. 일단 평정위 학생들도 정말 바빠서 정기회의 시간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학생들도 각종 수업과 자치활동, 동아리활동 등으로 알찬 일과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침마다 모여 사안 진행 과정을 확인했습니다. 평정위원들이 학생들과 만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없는지 확인하고, 학생들이 성찰할 수 있는 평화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그것을 실행하고, 평정위원들이 지치지 않도록 독려하는, 1교시 직전까지 회의하는 정신없는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언젠가 돌봄은 참 아름답고 눈부시면서도 어렵고 고된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한 일상 속에서도 빛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계속 살아가는 거겠죠? 2학년 학생들이 움직이는 학교 때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6학년 학생들이 사회체험학습을 마친 후 자신이 얻은 배움을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순간도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우리의 일상이 모여 빛나는 감동을 만들어낸다고 믿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에세이를 쓰라고 하니까 쓰기 싫었는데(^^) 이렇게 저의 1학기를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감사하네요. 저는 제 일상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학기 중에는 지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돌이켜보니 즐거웠던 기억이 많이 떠오릅니다. 아마도 저는 잘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짧게 쓰려고 했는데 네 바닥을 써버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