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칼럼


[교장칼럼]불안이 멈춰야 성장이 시작된다.

불안이 멈춰야 성장이 시작된다

제천간디학교 교장 황선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논어(論語) 학이(學而) 편의 첫머리에 나오는 공자의 말입니다. 기억이 명확하진 않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이 문장을 배울 때 저는 전혀 즐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때는 왜 배우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지금 돌아보면 공부가 삶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 나름의 큰 재미를 느끼곤 했습니다. 코로나 끝자락,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대학원 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덕산에서 서울까지 왕복 5시간이 훌쩍 넘는 길을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집에 들어가면 새벽 1시가 넘는 고단한 일정이었지만, 배우는 재미가 좋아서인지 피곤한 줄도 모르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왜 중고등학교 시절엔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을 한참 나이 들어 배울 때 비로소 느꼈을까요? 그 공부한다고 살림이 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으려 할 때는 의지가 필요하고, 그 의지를 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때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항목들이 있습니다. 열등감, 불안, 욕망, 결핍, 질투, 분노, 저항, 경쟁, 호기심, 보상, 탐구심, 인정욕구, 그리고 도파민 보상 등 다양한 감정 기제가 작용합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에너지의 크기도 다르고, 사람과 방법에 따라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와 각 가정은 아이들을 교육할 때 어떤 감정을 자극하고 계십니까? 아이들은 지금 어떤 에너지를 태워 자신을 움직이고 있습니까? 

 

청소년기는 생물학적으로도 불안도가 높은 시기입니다. 이성을 담당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은 아직 다 성숙하지 않았지만,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편도체는 이미 활발하게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호르몬은 폭풍을 치고 있고 작은 불안도 크게 느껴지는 대혼란의 시기를 청소년들은 건너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이기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을지 모른다는 공포, 실패를 온전히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탓해버리는 분위기, 그리고 SNS의 발달로 과시적으로 포장된 삶이 세상의 기준이 되어버린 환경 탓에 우리 아이들은 더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간디학교는 바로 이 불안에서 파생된 부정적 생각들로 학창 시절이 멍들어가는 아이들이 조금 더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내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만들어진 학교입니다. 여러 목적과 이유가 있겠지만, 그 기저에 깔린 가장 기본적인 설립이유는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만들기 입니다. 간디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양육자들 또한, 이런 불안한 사회의 생각이 내 아이의 청소년기를 어둡게 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곳을 선택하십니다. 교사들 또한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고유한 잠재력과 가치를 알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조금 덜 불안해하며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을까요? 아니, 아이들이 전 인생을 긍정하며 진취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삶이 팍팍해 불안한 것은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취업 걱정에 잠 못 이루는 2030 청년들도, 자식과 부모 걱정에 힘겨운 4050 장년들도, 노후 생계가 걱정인 노년들도 모두 자신의 삶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간디학교는 청소년기에 자신의 삶을 불안으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남은 인생 전부를 불안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태도를 기르는 첫걸음이라고 확신합니다.

 

불안은 전염되어 확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불안이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기에 우리 아이들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불안을 피해 간디학교에 왔지만 사회와 완전히 단절될 수는 없기에 간디의 아이들도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국가가 우리의 공부를 인정해주지 않으니 더 불안하고, 다르면 차별하는 사회 풍토를 알기에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비고츠키는 인간 행동 발달 단계가 본능, 관습, 지성(이성), 자유의지 순서로 발달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자유의지'는 단순히 내가 원해서 행한다는 자기선택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알면서도 배교하지 않는 종교인이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독립운동가처럼, 이성적·합리적 판단으로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될 것을 알면서도 그 판단을 거슬러 선택하는 의지적 행위의 발현을 말합니다. 이성의 합리성과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생각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추운 겨울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아스팔트 위에서 밤을 지새울 수 없습니다. 자유의지가 발달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순교자가 되거나 투사가 되는 것은 아니며 자유의지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기심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의지의 발달은 불안을 이겨내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불안의 해소만을 바라며 불안에 떠밀려 다니는 아이는 정작 그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목적의식을 가지고 불안 앞에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고 즐겁게 삶을 살아가는 아이는 나름의 성취를 만들어 가는 삶을 살지만, 불안에 떠밀려 전전긍긍하는 아이는 기대하는 성과도 만족도 얻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불안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큰 에너지원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모두 불안, 질투, 열등감 같은 부정적인 이름의 에너지 또한 사용하며 성장합니다. 이름이 부정적이라고 해서 그 에너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며, 이런 감정이 모두 사라진 인간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에너지가 우리의 판단과 선택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불안을 태우며 달려가는 것은 스스로를 불태우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리는 선택의 이유가 '불안' 때문은 아닌지 깊이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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